좋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한, 우리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친구가 있었다. (광고 기획자라니. 말만 들어도 폼나고 근사한 직업이 아닐 수가 없었다.)
광고는 15초라는 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예술이라며 술 마실 때마다 우리를 어안벙벙하게 만드는 멘트를 날렸던 친구였다. 각종 대학생 광고 공모전 등을 휩쓸며 어릴 때부터 자기의 꿈을 부던히 쫓던 친구였다. 광고에 이 한 몸 바치리라는 그녀의 열정은 조국 해방에 이 한 몸 불사르리라는 유관순 언니보다 더 맹렬해 보였고, 입사 후 얼마 안 돼 직접 광고 기획에 참여하여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친구였다. 그 후 얼굴 보기 무척 어려웠지만 가끔 만나면 자신이 만든 광고를 보았냐며 신이 나서 떠들던 친구였다.
그랬던 그 친구가 내일이면 한국을 떠난단다.
광고가 좋아 스스로를 광고쟁이라 거리낌 없이 부르던 친구가 이제 광고쟁이 안 한단다.
광고에 대한 청진한 열정만으로 조직 생활을 버티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망가졌단다.
몇 주전 그 친구의 조촐한 환송 파티를 했었다.
호리호리하던 몸이 비대하게 뚱뚱해진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지만 마음까지 그 정도로 힘든 줄은 몰랐었다.
열심히 돈 벌다가 자신을 몽땅 잃을 것 같다며 씁쓸히 웃던 모습에 자꾸 마음이 아팠다.
그 친구에게 언제부터 광고가 월급 받고 하는 '회사일'이 되었나를 생각하느라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자꾸 갸우뚱거렸다.
한국을 떠나면 다신 안 돌아올거라고 했었다.
나 보러도 안 올거냐고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묻자 비행기표 보내 줄테니 나보고 오란다.
당분간은 이 곳에 오고 싶지 않다고, 나이가 좀 더 들어서 나고 자란 곳이 그리워지면 그 때 돌아오겠다고 한다.
비행기 시간이 내일 이른 새벽이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단다.
바로 그 곳으로 살러 가는 것은 아니고 여행을 좀 하다가 들어 갈 거라고 한다.
어릴 때 외국 생활을 한 경험이 많아 워낙 영어가 유창한데다 계획성까지 있는 친구라
가서도 잘 살 것 같다고 하자
최소한 여기보다는 낫겠지, 라며 또 씁쓸하게 웃는다.
나보고 잘 있으라고, 보고 싶을 거란다.
내 엉뚱한 공상이 일 하는데 가끔 도움이 되기도 했다며 이제 그런 헛소리 받아줄 사람 없어져서 어쩌냐고 내 걱정을 한다.
나는 강아지들과도 대화를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니가 그러니까 더 걱정이라고 한다.
아무튼 나는 걱정하지 말고 약속한 비행기표나 보내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전화기 너머로 그 친구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서로 말 없이 전화기를 들고 투둑. 뚝뚝. 뚜뚜뚝. 또르르. 또로록. 뚜룩뚜룩. 똑똑,
눈물 떨어지는 소리만 듣고 있었다.
살 좀 쪄라. 건강하고. 너는 언제나 니가 원하는대로 잘 살고 있을 것 같아.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남들이 뭐라하든. 그러니까 살 좀 쪄라. 아프지말고. 아무튼 살 좀 찌고 잘 지내라.
살 좀 찌라는 말을 여러번 남기고 딸각. 전화가 끊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