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에 있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꺼내 아이팟 터치 2세대 16G를 사 놓으라고. 요즘 군대가 많이 편해져 휴대폰이나 mp3플레이어 등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얘길 (물론 몰래) 들은적이 있는데 진짜인가보다. 어쨌든 인터넷으로 아이팟을 구매한 게 올해 3월. 동생은 외박 나와서 바로 가져가야 하니 아이팟을 처음 사면 무슨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서 설정을 해야하는데 나보고 그것도 좀 해놓으란다. 그게 처음하면 좀 복잡해서 자신이 할 시간이 없단다. 귀찮아서 싫다고 했다. 니가 나와서 직접 하라고.
그래서 기십만원을 호가하는 요 비싼 물건이 내 방에 박스 채로 방치되기 시작한게 벌써 4개월 전이다다. 처음 배송이 오자마자 딱 한 번 꺼내어 켜보고 '음, 이쁘네'하고는 다시 집어 넣어 버린 것이다. 나는 원래 기계에 관심도 없고 얼리어답터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마디로 기계는 성능만 잘 돌아가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사고방식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동생은 지난 4개월간 간간이 전화를 걸어 제발 아이팟 좀 사용하라고 어지간히 조르고 구박했다. 나는 '그렇게 비싼 물건 함부로 썼다가 고장이라도 날까 두렵다'는 핑계로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물론 사용할 필요성을 전혀 못느꼈기 때문이다. 나도 구형이지만 MP3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고, 노트북까지 있는데, 그 코딱지만한 화면을 가진 기계가 무슨 소용이겠나. 게다가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 전혀 보는 일이 없고, 영화는 항상 극장에서 본다는게 내 주의라 나에게는 정말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어제 동생에게 절박한 통보가 날아왔다. 다음주 화요일에 휴가를 나오는데, 고향까지 가는 버스에서 길고 지루한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단다. 그러니 어여쁜 나의 누나여, 아이팟에 멜론 인기 top 100곡을 넣어주시는 성은을 베풀어 주시면 이 은혜 잊지 않을테니 제발, 제발 좀 아이팟 좀 꺼내어 빛을 보게 해주소서가 그 넘아의 주된 용건이었다. (동생은 연천에서 복무 중인데, 용산에 일단 와서 나에게 아이팟을 계승받고 나와 점심을 함께 먹은 후에 내려갈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다.) 어찌나 간절히 읍소를 하던지 눈하나 깜짝 않던 내가, 알았다고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 먼지 켜켜이 쌓인 박스에서 아이팟을 꺼냈다. 이상한게, 왜 박스 안에 설명서가 없는 것일까? 설마 설명서만 빠지고 온 불량품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것저것 뒤적이다 작은 종이 쪼가리를 하나 발견했다. 설명서는 인터넷에 친히 올라와 있으니 직접 찾아서 보라는. 뭐 이런 불친절한 것들이 다 있나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접속을 하여 itunes라는 프로그램과 설명서를 다운 받았다.
고생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mp3플레이어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외장 디스크로 인식이 되어 파일을 복사하여 붙여넣기만 하던 내 mp3와는 다르게, 이건 뭐 시작부터 요상한 프로그램이 뜨더니 이것저것 입력하란다. 시키는데로 다 했는데 갑자기 payment method를 고르란다. 헐. 설마 이걸 설치하는데도 돈을 받나 싶어 검색을 해보니 프로그램 사용 자체는 무료란다. 그래서 그냥 나가기를 누르고 mp3파일을 음악 폴더에 집어 넣어봤는데 아이팟에서 인식이 안된다. Itunes에서는 재생이 되는데 아이팟에는 폴더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음........... -_- 이때부터 슬슬 스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설명서를 찾아보니 동기화를 해야한다는데, 동기화는 대체 어떻게 하는것인지가 안나와있다. 아이팟을 컴퓨터에 연결하면 무슨 아이콘이 뜬다는데, 내 눈엔 그게 보이지 않고, 다시 검색에 검색을 하다가 두어 시간이 지났다. 뭘 어찌어찌 클릭대다보니 동기화가 완료 됐단다. 아..이제 드디어 됐구나, 싶어서 mp3 파일을 넣으려는데, 이번엔 무슨 업데이트를 해야한다며 또 payment method..가 어쩌고 뜬다. 아이팟은 업데이트도 유료로 해야하는 거야? 경악을 금치 못하고 다시 또 검색창에 이것저것 물어보니 불법으로 하는 방법도 있긴 있었다. 다만 그걸 하나씩 배워서 하기도 귀찮고 (내것도 아닌데 왜?) 이미 시간은 많이 잡아먹었기 때문에 (후딱 끝내고 도서관 가려고 했는데 이미 문 닫을 시간ㅠㅠ) 그냥 결제해야겠다.
여기까지 해놓고 짜증도 나고 배가 고파서 손을 놔버렸다. 최신 기계에 이렇게 헤매는 모양새가 늙은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서럽기도 하고, 돈독이 올랐는지 업데이트에도 돈을 받는 아이팟도 짜증나고, 사용법과 설명서가 이리도 불친절한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열광하며 많이 사용하는지, 세대 간의 간극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지가 와서 직접 할 것이지 왜 나보고 해놓으라고 어려운 부탁을 하는지 동생한테도 신경질 나고, 사병들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길래 휴대폰이니 아이팟을 버젓이 들고 간다는 것인지 국방부에도 화딱지 난다.
6시가 다 되어간다. 황금같은 일요일을 아이팟과 씨름하며 다 보냈다. 난 아이팟이 정말 싫다. 낡은, 하지만 사용하기 쉽고, 따로 돈 들 일도 없는 나의 코원 mp3 플레이어나 알뜰살뜰 보살펴서 오래오래 사용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