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ty D。님의 장거리 연애.를 읽고...
A와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A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나는 그 때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다른 남학생에게 지대한 애정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했던 남학생과 연인이 되지 못했고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면서 그 삼각관계는 그냥 스치는 인연으로 남았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 직후 A에게 한 번 메일이 왔었다. 내 인생의 앞날에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난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 후 7년만에 A에게 메일이 왔다. 오랜만이야, 그 동안 잘 있었어? 라는 다소 진부한 인사말로 시작된 메일이었다. A는 대학을 마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그 곳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며칠 후에 한국에 온다고 했다. A는 20대 초반의 나를 무척이나 예쁜 여자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너는 별 것 아닌 일에 해실해길 잘 웃는 아이였고,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어딜가나 누구에게든 사랑을 받는 아이였는데... 지금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그랬나?'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지금 나는 별 것인 일에도 잘 웃지 않고, 에너지는 고갈되었으며, 지독한 애정결핍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땐 내가 정말 그랬단 말이야? 한국에 오면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서정적인 그의 편지는 나의 마음을 달뜨게 했다.
A를 만나기 전, 변해버린, 정확히 표현하면 더 이상 풋풋하지 않은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 한동안 안하던 팩까지 하며 예전의 싱그러움을 되찾기 위해 정말이지 용을 썼다. 그 땐 그 사람에게 관심조차 없었는데 왜 이렇게 설레는걸까. 정말 연애가 고프긴 고픈가보다 하며 혼자 실없이 웃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7년 만에. 서로 얼굴을 보며 참 어색하게 웃었다.
그 후에 몇 번의 만남. 즐거운 시간. 조금씩 커지는 감정.
그러나 A는 올 여름이 지나면 박사학위를 받으러 다시 프랑스로 가야한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차라리 A가 (허세일지언정) 확언을 해주면 그대로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A는, 지키지 못 할 약속은 하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였다. 내가 무턱대고 현재의 감정에 나를 던지지 못하는 겁이 많은 사람인 것 처럼.
설레면서도 불안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성수기라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항공권을 알아보는 A를 보며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A도 그런 나를 보며 미안해했다. 나쁜 상황보다는 나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더 사람을 미치게했다. 유럽땅은 밟아 본적이 없어 한국-프랑스는 어느 정도 거리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그 곳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미련이 남아 한동안 삶이 조금 흐트러졌지만 이내 지루하고 평온해졌다.
장거리 연애라는 것의 기준이 어느정도 길어야 장거리라 부를 수 있을까. 서울-프랑스 정도면 충분히 장거리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실패했지만 말이다. 또 얼만큼 긴 거리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서울-부산쯤이라면 가능할까. 아냐, 보고싶은 걸 못 참는 나는 우리집-일산도 못 견딜것 같다.
고로 동네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건가? 하긴 우리동네 생선가게 총각이 좀 멋있긴 하던데. 내가 가면 항상 덤으로 홍합이나 바지락 등을 집어주는데... 아, 아침 8시 45분 경에 5516번을 타는 남자도 괜찮던데. 세탁소 아줌마가 나 며느리 삼고 싶다고 아들 소개시켜 주신다고 했는데.
이제부터 무릎 나온 츄리닝 입고 동네를 어슬렁 거리지 말아야겠다. 유통망은 인근 지역을 잠식하면서부터 확장되는 것이다!
A와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A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나는 그 때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다른 남학생에게 지대한 애정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했던 남학생과 연인이 되지 못했고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면서 그 삼각관계는 그냥 스치는 인연으로 남았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 직후 A에게 한 번 메일이 왔었다. 내 인생의 앞날에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난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 후 7년만에 A에게 메일이 왔다. 오랜만이야, 그 동안 잘 있었어? 라는 다소 진부한 인사말로 시작된 메일이었다. A는 대학을 마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그 곳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며칠 후에 한국에 온다고 했다. A는 20대 초반의 나를 무척이나 예쁜 여자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너는 별 것 아닌 일에 해실해길 잘 웃는 아이였고,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어딜가나 누구에게든 사랑을 받는 아이였는데... 지금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그랬나?'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지금 나는 별 것인 일에도 잘 웃지 않고, 에너지는 고갈되었으며, 지독한 애정결핍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땐 내가 정말 그랬단 말이야? 한국에 오면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서정적인 그의 편지는 나의 마음을 달뜨게 했다.
A를 만나기 전, 변해버린, 정확히 표현하면 더 이상 풋풋하지 않은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 한동안 안하던 팩까지 하며 예전의 싱그러움을 되찾기 위해 정말이지 용을 썼다. 그 땐 그 사람에게 관심조차 없었는데 왜 이렇게 설레는걸까. 정말 연애가 고프긴 고픈가보다 하며 혼자 실없이 웃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7년 만에. 서로 얼굴을 보며 참 어색하게 웃었다.
그 후에 몇 번의 만남. 즐거운 시간. 조금씩 커지는 감정.
그러나 A는 올 여름이 지나면 박사학위를 받으러 다시 프랑스로 가야한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차라리 A가 (허세일지언정) 확언을 해주면 그대로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A는, 지키지 못 할 약속은 하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였다. 내가 무턱대고 현재의 감정에 나를 던지지 못하는 겁이 많은 사람인 것 처럼.
설레면서도 불안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성수기라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항공권을 알아보는 A를 보며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A도 그런 나를 보며 미안해했다. 나쁜 상황보다는 나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더 사람을 미치게했다. 유럽땅은 밟아 본적이 없어 한국-프랑스는 어느 정도 거리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그 곳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미련이 남아 한동안 삶이 조금 흐트러졌지만 이내 지루하고 평온해졌다.
장거리 연애라는 것의 기준이 어느정도 길어야 장거리라 부를 수 있을까. 서울-프랑스 정도면 충분히 장거리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실패했지만 말이다. 또 얼만큼 긴 거리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서울-부산쯤이라면 가능할까. 아냐, 보고싶은 걸 못 참는 나는 우리집-일산도 못 견딜것 같다.
고로 동네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건가? 하긴 우리동네 생선가게 총각이 좀 멋있긴 하던데. 내가 가면 항상 덤으로 홍합이나 바지락 등을 집어주는데... 아, 아침 8시 45분 경에 5516번을 타는 남자도 괜찮던데. 세탁소 아줌마가 나 며느리 삼고 싶다고 아들 소개시켜 주신다고 했는데.
이제부터 무릎 나온 츄리닝 입고 동네를 어슬렁 거리지 말아야겠다. 유통망은 인근 지역을 잠식하면서부터 확장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