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준비가 되면 만나고 싶어. 그 '준비'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의미인지 알지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핑계야. 어쩌면 '못' 만나는데 그걸 죽어도 인정하기 싫은 내 자존심을 보호해주는 마지막 장치랄까. 그러면서도 늘상 외로워 죽겠다를 연발하지. 그런 말이라도 안하면 사람들이 나를 성정체성에 문제있는 사람으로 치부할까봐. 근데 실제 외롭기도 해, 무척이나. 오늘처럼 청아한 하늘을 보며, 쌩쌩 부는 바람을 맞으며 혼자 집에 들어오는 길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어. 전화해서 보고 싶다고 애교 떨고 커피 사달라고 조르고 싶어. 하지만 그 '준비'라는 것이 끝나지 않는 한 나는 누구를 만날 자격이 안되는 것 같아 자꾸 망설이게 돼. 세상이 부여한 자격이라는 것이 어찌나 까다롭고 삼엄한지 시작도 하기 전에 위축이 드는 느낌. 마치 고(高)스펙의 지원자들이 줄줄이 서있는 입사지원 창구에 몇 줄 씌여지지도 않은 허름한 이력서 들고 얼쩡거리는 심정이랄까. 어쨌든 그 준비라는 것이 언제쯤 끝나고 본 게임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아마 그 때까지 외로워 죽겠다를 외치며 하루하루 무덤덤하게 외롭지 않은척, 바쁜척 하며 살아가겠지.  

by 에스메랄다 | 2009/05/17 22:02 | 사랑과 사람에 관한 잡소리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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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ID;catty D。 at 2009/05/17 23:57

제목 : 나 역시 아직은.
에스메랄다님의 아직은을 읽고나서... ......물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많지만, 지금도 준비가 되어있지만. 내가 그에게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삼아본다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내가 상대방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로, 내가 어떻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게 내 결론이다. 내 스펙이나, 내 성격이나... 솔직히 지금은 자신이 없는 상태이다. 물론 내 눈은 높지만 말이다. 이런......more

Commented by catty D。 at 2009/05/17 23:49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싶어졌네요... 트랙백 보냅니다.
Commented by 에스메랄다 at 2009/05/21 09:50
헤헤 ^^ 트랙백 구경하러 갑니다~
Commented by 세실 at 2009/05/18 16:34
언젠가는 인연이 닿을 것이예요~ 그때까지 자신을 가꾸며 지내는 것이죠~
Commented by 에스메랄다 at 2009/05/21 09:50
네, 언젠가 닿을 그 인연이.. 빨리 닿았으면 좋겠어요 ^^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예요..
Commented at 2009/05/19 22: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에스메랄다 at 2009/05/21 09:43
^^ 날씨가 좋아서 마음이 변하기도 하구요, 날씨가 나빠서 마음이 변하기도 해요.. 달고나님이 본인이 아닌것 같다는건 분명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 것일텐데 그게 뭔지를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답은.. 없죠, 그 무엇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는...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보는 수밖에요...

그냥 행복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인생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리 인간에게 우호적인 것 같지 않거든요.. 다만 그 고통 속에서 치료약을 찾아야죠.. 그 치료약이 효과가 없거나 적절한 때에 처방이 안되거나, 혹은 투여량이 너무 적다거나 하면.. 사람은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고 봐요..

어떤 치료약이 필요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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