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거대한 도시에 사는 한, 하루에 두 번씩 평생 택시를 탄다고 해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같은 택시를 탈 수 없는데, 그런데도 때로 우리는 원래 만나기로 한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또 사랑에 빠지고, 코발트블루에서 역청빛으로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황홀한 밤하늘 속으로 머리를 불쑥 밀어넣는 것과 같은 황홀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이 도시와 청춘의 우리가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리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극한의 절망과 다른 선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완강하고도 그만큼 멍청한 확신 사이를 한없이 오가면서 그 무엇도 아닌 존재에서 이 세상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어떤 사람들. 시시각각 변하는, 그러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얼굴을 지녔지만, 결국 단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얼굴들. 그와 비슷하게 이 도시에서는 깊은 밤의 퇴근길 한강을 따라가면서 지친 얼굴로 바라보는 밤의 또렷한 풍경과 멀리 내몽고의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먼지로 뿌옇게 뒤덮인 낮의 풍경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맞이하는 하루 1440개의 순간들은 모두 똑같이 아름다웠다. 60초든, 1000분의 1초든, 모든 풍경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변하는 청춘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날 나는 이제 다시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완전히 새로운 스무시간하고도 십육 분,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서른 해에 이어지는 스무 시간하고도 십육 분을 보낸 셈이었다.
-김연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07-108
머지 않았다, 그 날에 닿는 순간이. 아무것도 뒤바뀔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 대단한 변화가 있으리라는 믿음, 그것 조차 이젠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두려움을 뚫고 마주서는 것이 아니라 홀연히 맞딱뜨려야 하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참 무겁고도 머리 아픈 일이다.